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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미국 경제와 주식 발전 역사. 록펠러와 트러스트의 등장

by 미국시골청년 2022. 1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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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20세기의 경제발전 히스토리

 

저번 글에 이어서 두 번째 글입니다. 이번 글부터는 20세기 히스토리를 말씀드리려 합니다. 

20세기가 되자마자 미국에서는 스낵 산업이 활발해 졌습니다. 주로 캔디, 껌, 비스킷 등입니다. 그리고 스낵 제품을 생산하고 유통하는 회사들의 주식도 상장되기 시작합니다. 

20세기 이전의 스낵은 매우 허접했습니다. 기껏해야 건빵이나 설탕 스낵 등이 전부였습니다. 그리고 스낵 산업이 활발해지면서 이런저런 스낵회사들이 발전하였고 결국 여러분들도 잘 아는 나비스코라는 회사로 합병하였습니다. 이 회사는 이 당시 3천만 달러의 주식을 팔면서 기업을 공개하기도 했습니다. 이 회사의 최초 주주는 1,300명 정도였습니다. 

 

이 나비스코 회사는 간식거리 시장에 혁신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맛도 훌륭하고 생산량도 많았고 신상품도 꾸준하게 나왔습니다. 이때 만들어진 것이 '오레오' 입니다. 저도 가끔 당이 땡길 때, 오레오 과자가 들어간 쉐이크를 사 먹는데 이 제품이 이렇게 오래된 건지는 미처 몰랐네요. 

케찹의 대명사 하인즈
하인즈케첩

그리고 케찹하면 떠오르는 회사인 '하인즈' 도 이때 등장합니다. 발효된 생선으로 만들어진 동양의 소스인 케치압에서 아이디어를 따 와서 제조법을 만들었습니다. 생선 대신에 토마토만 대체하여서 만들게 됩니다. 이 케찹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자 겨자, 피클, 래리쉬, 올리브 등 햄버거에 들어가는 각종 소스는 모두 하인즈에서 대량생산을 하게 됩니다. 공장만 6개 주에 있었고 직원수는 2만 8천 명 정도 되었습니다. 그리고 20만의 농부와 농작물 계약을 맺게 됩니다. 

 

이 하인즈 말고도 콘푸로스트로 유명한 '켈로그'와 초코렛의 대명사 '허쉬' 등도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만들어진 제품들도 결국 상점에서 판매를 해야만 의미가 있겠죠? 1800년대 중반만 하더라도 미국에서는 슈퍼마켓이라는 개념이 없었습니다. 

조지 길만과 조지 하트포트 두 명의 티 매니아가 뉴욕에 A&P라는 이름의 티 회사를 작게 내었고, 점점 사업을 확장해서 다른 주에도 점포를 내게 됩니다. 그리고 관리하는 종목도 늘렸고 버터, 우유, 커피 등등을 취급하였습니다. 1920년대에는 점포 수가 1만 5천 개에 이르었고, 1년 매출만 무려 10억 달러였습니다. 

 

록펠러의 등장과 트러스트 제도의 무서운점

 

그리고, 저의 지난 글에도 나와있듯이 기계가 발전하고 철도/운송시설과 철강산업이 발달하면서 급격하게 미국 경제가 발전합니다. 하지만 너무나 급격하게 빠르게 진행되어서 사람들이 이에 적응할 시간은 부족하였습니다. 특히 재산법과 상법에 관련된 거래제도가 많이 부족한 실정이었습니다. 이 당시 불완전한 법을 바탕으로 부를 이룬 사람 중 우리가 잘 아는 철강왕인 앤드류 카네기와 체이스 은행 하면 생각나는 JP 모건, 그리고 가장 유명한 존 록펠러 등이 있습니다. 특히 록펠러는 모든 정유회사를 하나로 통합하여서 가격을 자기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힘이 있었습니다. 

록펠러센터
뉴욕에 있는 록펠러센터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자본주의는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자본주의하면 생각나는 것이 아이디어가 있는 누구나 공평하게 성공할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 떠오르시죠? 하지만 점점 소수의 기업이 독점하는 상태로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독점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는 여러분도 잘 아실 겁니다. 

 

1870년대에는 이런 가격을 담합하는 행위인 '카르텔'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좀 전에 언급한 록펠러에 대하여 이야기 하자면 그는 상위 40개 경쟁 업체를 하나의 독점적 기업결합으로 조직을 하였습니다. 경쟁업체는 말만 경쟁업체이지 어떠한 선택을 할 수 없었습니다. 록펠러는 만약 가입을 하지 않는다면 너네들을 반드시 파산시키겠다고 협박을 하여 경쟁업체들을 모두 자신의 아래로 통합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설립된 회사의 이름은 Standard Oil Trust 가 됩니다. 그리고 이 회사는 정유 산업의 90%에 달하는 통제권을 갖게 되어 막강한 권력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로 인해서 소비자들은 비싼 가격에 석유를 살 수밖에 없게 됩니다. 

 

또한, 이들은 운송료를 더 낮추려고 철도회사에도 협박에 가까운 압력을 넣었고, 이는 록펠러의 재산을 더욱 증식시키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록펠러의 트러스트를 만들어 담합을 하는 행위가 모든 사업가들의 롤모델이 되었고, 결국 1895년부터 10년동안 모든 미국의 공개기업의 1/3이 합병으로 사라졌습니다. 그리하여 서민들의 삶은 더욱 힘들어졌으며 트러스트의 오너들은 막대한 부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이때를 가리켜 미국 자본주의 역사에서 가장 힘들고 암울했던 시기라고 말합니다. 삶이 힘들어진 서민들은 반트러스트 운동을 참여했으며 정부와 법원도 같이 싸우게 됩니다. 마침내 1904년에 연방대법원이 트러스트는 불법이라 판결을 하였으며 그 당시 대통령이었던 루스벨트는 '트러스트 파괴자'라는 별명을 갖게 됩니다. 이때부터 정부는 한 분야에서 독점이 발생할 것 같다 싶으면 반트러스트 법을 적용시켜 소송을 하고 있습니다. 그로 인해 기업들은 합당하고 공정한 경쟁이 회복 되었습니다.  

 

다음번에 3부로 찾아오겠습니다. 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1부를 읽고 보시면 더욱 좋습니다 

https://sammybasket12.tistory.com/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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